날이 밝아오자, 마을에서 사람이 왔다.
"남쪽 대륙의 군대가 진군하고 있다고 하네. 마을에선 무기를 다루는 자들을 모으고 있다네."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다시 올라오고 있나보군."
사냥꾼의 미간에는 주름이 잡혀 있다.
"잠시만... 나중에 찾아가지."

사냥꾼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듯 소년을 찾아와 말했다.
"네가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가 있구나."
"무슨 일이시죠?"
"곧 전쟁이 일어난단다."
"전쟁? 이 북쪽 끝에도 전쟁이 일어나나요?"
"그래. 이곳에선 남쪽에서 도망 온 학자나 술사들이 많기 때문이지."
"그럼 아저씨도 도망 온 사람인가요?"
"..."
한동안 얘기를 못 잇는 사냥꾼.
"그래, 난 남쪽 대륙에서 왔단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사람들이 필요하단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들과 함께 가지 않지요?"
"그래. 이전에도 그랬지만, 그들은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단다. 헌데 문제는 이전에도 실패한 일을 반복할 정도로 저들은 어리석지 않단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이유요?"
"그래. 난 사람들을 데리고 남쪽 대륙의 군대를 맞으러 마을을 비워야 한단다. 하지만, 그들이 이 마을을 노리고 올 것 같단다. 네가 막아줬으면 좋겠구나."
"제가요?"
"그래."
"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하지만 네겐 의지하고 싶구나. 나의 아내와 딸을 부탁한다. 할 수 있겠지?"
"네. 그럴께요."

사냥꾼의 황급한 부탁에 아무 생각없이 대답한 소년을 뒤로하고, 사냥꾼은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다급한 와중에 소년의 검을 집었다가 짐칫 놀랐다.
"왜그러세요?"
"아니... 아니다. 돌아와서 얘기하마. 꼭 살아 남아야 한다."
"네."
사냥꾼이 건낸 검을 받고 소년은 물러섰다.

마을사람들은 민첩하게 훈련된 군사와 같았다.
그들은 사냥꾼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곧 마을을 떠났고, 소년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은 채 사냥꾼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야, 이거 누군가 했더니 꼬마잖아?"
"?"
누구인지 몰라도, 큰 키의 남자가 소년을 보고 있었다.
"아아~ 걱정하지마. 난 장.. 아니, 사냥꾼의 부탁으로 널 지켜보러 온거야."
큰 키에 큰 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단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는 남자.
그는 소년을 훑어보더니 지시를 내린다.
"자! 우린 할 일이 많아. 빨리 움직이자!"

그는 소년과 함께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소년에게 지시사항을 내렸다.
"잠깐만요. 왜 이래야 하는거죠?"
"넌 전쟁을 몰라. 전술도, 전략도. 장군, 아니 사냥꾼은 너에게 그걸 가르쳐두랬어."
"네? 장군이요?"
"아~참! 넌 몰라!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잔말 말고 잘 기억해둬!"
생김새와 달리 성급한 이 남자는 소년을 닥달해가며 적이 올 곳에 올가미를 쳐두고, 함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소년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해가며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얘기해줬다.
"분명히 이 마을에 급습이 있을거야. 없으면 더 좋고. 잘 들어. 평소에는 장군이 나에게 맡으라고 했던 일을 너에게 일임하라고 했어. 네가 검을 잘 쓴다며? 이번 전쟁엔 분명 사람이 나서진 않을거야. 네게는 다행스러운 일이겠지. 하지만 명심해둬. 사람이 아닌만큼 그것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공격해올거야. 넌 꼭 그것들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리고 못 버티겠으면 내가 지시한대로 움직이도록 해. 명심해라! 꼭!"
"그것이라뇨?"
"괴물이지."
"괴물?"
"그래. 남방의 술사들은 괴물을 만들어 공격하는 기술이 있어. 아마도 네 검을 보시곤 네게 이 일을 맡기셨을지도 몰라."
"..."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소년은 그저 멍하니 있었다.
"뭐해! 빨리 움직여! 이제 곧 나타날 때가 다가온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소년은 마을 어귀에 눈 덮힌 언덕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왔어요!"
소년은 무엇이 왔는지도 모르면서 소리쳤다.
"가자!"
키 큰 남자는 잽싸게 뛰어가면서 소년을 데리고 뛴다.
눈이 울렁거리더니 큰 덩어리로 뭉쳐서는 마을을 향해 덮쳐오기 시작했다.
"네가 저것들을 베어버려!"
소년은 알 수 없는 눈덩이들을 베기 시작했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엔 큰 덩어리의 눈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빨리! 더 빨리!"
마을의 경계에 몰려드는 눈덩이들을 하나씩 제거해갔지만,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눈덩이들은 이내 마을로 덮쳐 들어오는가 싶더니 마을 경계를 지나고선 눈으로 변해 파도를 이뤘다.
"올가미가 눈에 덮혔다! 저 쪽으로 짐승들이 오기 시작할꺼야! 뛰어!"
키 큰 남자는 건물 옆에 세워둔 기름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멀리서 짐승이 떼로 달려들었고, 남자는 횃불을 들어 기름병이 깨진 자리에 불을 붙였다. 불은 순식간에 붙고 눈으로 덮혔던 곳 위로 불의 장벽이 일어났다. 짐승이 짐짓 물러난 틈을 타서 소년은 검으로 짐승들을 베기 시작했다. 짐승 무리가 갈피를 못잡는 사이, 반 남짓한 짐승들이 쓰러졌다. 짐승들은 점점 몰리는가 싶더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일단, 한 숨 돌렸다."
키 큰 남자는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 소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하자구... 아무래도 저녀석들 좀 일찍 물러선 것 같다. 다시 올거야."
소년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또 온다는 얘기에 긴장했다.
"이젠 언제 오느냐가 문제야. 분명 어두워지면 다시 나타날거야."
"헌데 왜 이 쪽으로만 오죠? 다른 쪽도 분명 오기 쉬울텐데요."
"다른 쪽은 대부분 넓은 평원이라 숨을 곳이 없어. 군사나 사람들이 몰려왔다면 멀리서도 보이지. 하지만, 이 쪽은 숲이 우거져서 몸을 숨길 수 있지. 마을에서도 얼마 떨어지지 않아서 숨어서도 상황을 파악하기 쉬워. 한 두명의 술사라면 이곳으로 올거야."
"왜 올 줄 알고 있었죠?"
"많은 수의 군인이라면 이미 들어왔을 때 우리가 알았을거야. 멀리서 군이 온다는 얘기는 너도 들었잖아?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온다는 얘기에 장군이 분명 술사들의 잠입을 눈치채셨을거야. 올가미와 함정의 절반은 못 쓰게 되었지만, 나머지는 쓸 수 있는 상태로 남아있어. 눈덩어리가 덮쳐 올 줄 몰랐지만, 아마 저들도 너의 존재를 알고는 놀랐을거다."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어요."
"장군의 출정을 방해해서 요충지를 먼저 확보하고 쳐들어 올 계획이었을거야. 이곳에서 요새까지는 하루 거리라서 한시라도 늦으면 방어가 불가능해. 남국의 병사가 많음에도 이곳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요새 때문이거든. 분명 우리의 저항도 눈치 채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겠지만, 네가 등장하고 나서 순식간에 계획이 틀어져 버린 것을 알고는 일찍 물러난 것일게다."
"..."
짧은 말로 사람을 다그치던 사람이 이리도 말이 많을 줄이야... 소년은 궁금한게 많았지만, 키 큰 남자의 닥달에 다시 이곳저곳을 불려다니며 적을 맞을 채비를 했다. 마을 사람들도 이곳저곳에 기름통과 장작을 준비해줬다. 아이들은 나무를 날카롭게 깎아서 눈 아래 땅에 묻었다. 아이들이 능숙하게 일을 하는 것을 보니, 이런 일이 한 두번은 아닌듯 싶었다.

한참 시간이 지났을 무렵, 저녁이 되어 소년은 아이들이 나눠 준 빵을 입에 물고는 마을 어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새벽에 꾼 꿈은 혹시 이런 일을 예상한 것이었을까? 소년은 자신의 마음에 걸렸던 일이 이런 일을 예상한 것인가 생각해본다. 그 사이 따뜻한 물을 컵에 담아 소년에게 갖다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냥꾼의 어린 딸이었다.
"자! 이것 좀 마셔!"
"응? 아, 고마워."
"안 아파?"
"응? 응. 안 아파."
"나 어렸을 땐 아팠는데."
"응? 어디가 아팠는데?"
"배도 아팠고, 머리도 아팠고, 팔도 아팠고, 다리도 아팠고... 피도 났어."
"피?"
"응. 아빠가 데리고 가서 안 아프게 뽀뽀도 해주고 해서 안 아팠어."
이 아이의 얘기는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지만, 비슷한 상황이 예전에도 있었고, 아이들이 다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너도 돌아가. 이제 여긴 위험해. 어서. 엄마에게 돌아가."
"응!"
불섶을 지나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심했었던 것일까? 키 큰 남자의 외마디 외침이 들려왔다.
"습격이다!"

한 순간 고요했던 마을이 난장판이 되었다.
"제길, 우리의 계획을 모두 보고 있었어. 함정이 있을 곳을 모두 피해왔어."
키 큰 남자는 아이들을 보호하며 이동하고 있었고, 소년은 칼을 잡고 짐승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마을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짐승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소년은 뛰어다니며 짐승을 하나씩 잡기 시작했다. 칼날에 스치는 듯 해도 짐승들은 쉽게 쓰러졌다. 이 때 이상한 차림의 사람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소년이 바라보자 그 둘은 피하듯이 뛰어갔다. 소년이 뒤따라 갔지만, 이내 불 섶에서 불이 붙은 장작을 기름통에 던지고는 도망했다. 기름통에 불이 붙어 마을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뛰어다니는 짐승들도 불길을 피해 달아나버렸다.

"어서, 불붙은 건물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켜!!!"
소년은 문을 두들겨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다,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 아파... 아파..."
소년의 눈 앞엔 불에 그을린 사냥꾼의 어린 딸이 짐승들의 잇자국이 난 몸을 움츠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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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02:17 2007/01/28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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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희 2007/01/31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 얼릉 다음꺼뚜 올려줘요~ \>_</~~ ㅎㅎ

    • 바부... 2007/01/31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삘 받을 때 올릴께요. 넘 급하게 쓰려고 하면 실망하는 글이 나와용. 가끔 부분부분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어서, 일부러 천천히 쓰려고 해용.

  2. hongiiv 2007/02/01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에서야 1편부터 쉬지않고 읽었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말이죠. 어서 다음편 나와라 ㅋㅋㅋ

    • 바부... 2007/02/02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시작이 너무 화려해서 중간부턴 내용이 없을까봐 걱정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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