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가 갖고 있던 미소를 이 아이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눈웃음이 활짝 핀 이 아이를 보고 있으니 누이가 생각났다.

소년은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맘이 슬퍼진다.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려는 소년에게 여자아이는

다가와서 작은 두손으로 머리를 잡고는 다짜고짜 뽀뽀를 해댄다.

"앗! 이... 이러지마..."

작은 아이는 연신 싱글거리는 웃음으로 소년의 차가운 빰에 얼굴을 댔다.

"웅? 오빠, 왜그래?"

소년은 누이와 닮은 미소를 가진 여자아이의 체온이 자신의 뺨에 번지자,

얼어붙었던 소년의 눈물샘이 녹아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괜찮아. 이 오빠는 기뻐서 우는것 뿐이란다."

어린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냥꾼은 따뜻한 미소를 짓는다.


"자, 어서 들어와. 이 곳이 내 집이란다."

"어서와요. 피곤했을텐데 난로 앞에 앉으세요."

여성의 목소리치고는 낮았지만 차분한 목소리의 여성이 사냥꾼과 소년을 맞았다.

소년은 차가운 들판의 숨결로 얼었던 자신의 몸이 녹아버린듯한 느낌을 들었다.

누이와 있을 때의 따뜻했던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

소년의 눈물은 멈출줄 몰랐다.


소년은 따뜻한 식사와 편안한 옷을 받고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옛생각에 잠긴다.

누이는 마음이 따뜻하고 미소가 환한 사람이었다.

차가운 벌판의 추위도 누이의 따뜻한 미소는 얼릴 수가 없었다.

환한 누이의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스스로 칼을 잡고 노력했던 자신.

차가운 눈 속을 꽁꽁 언 손으로 파헤치며 소년을 위해 낚시까지 했던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부모님과 있을 때 천을 짰고,

실을 만들어 살다가 부모가 죽자, 소년과 함께 조용한 산골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녀가 왜 산골로 이사와야 했는지, 아름답고 강한 누이가 왜 자신을 데리고

그 산골로 갔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는 죽은 부모가 남긴 자신을

묵묵히 자신을 길러주고, 키워준 어머니와 다름 없었을 뿐이다.

잠시나마 꿈 속에서 누이의 품을 느끼고 있을 때...


"따뜻해...."

누이를 안고 있는 듯한 착각... 하지만... 작은...

"헉!"

자신이 품고 있는 사람은 작은 여자아이였다.

"언제 들어온거야?"

"추워서 들어왔어. 아침 먹으래."

생글거리는 얼굴이 눈 앞을 왔다갔다 하며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짚는다.

"여긴 왜 그래? 아빠같아."

짐승의 손톱이 할퀸 자국들을 보며, 아이는 신기해 하기만 한다.

아이의 수다스러움이 맘에 안 들었을까?

소년은 말 없이 자리를 일어난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아빠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소년의 다그침에 아이는 짐칫 놀랐다.

"그치만 아빠도 안 가르쳐줘서..."

울듯한 표정으로 서있는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뒷말을 먹는다.

"그냥... 다쳐서 그런 것 뿐이야."

큰소리를 친 것이 아이를 울렸을까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 아이는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이렇게 수다스럽단다."

사냥꾼이 큰 소리에 놀라 올라왔나보다.

"죄송해요. 그럴려고 한게 아닌데..."

"괜찮아. 나 때문에 그런것이니...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아빠를

만난탓에 수다스러운 것 뿐이니... 조용하게 지내왔던 너로서는 참기

힘든 것이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이 애는 곧 수다스러워

질거야."

딸 아이 앞에서 웃는 사냥꾼의 표정이 너그러웠다. 그제서야 소년도

안심이 되었는지 얼굴이 밝아진다.

"자! 밥먹자! 오랫동안 고기만 먹어왔으니, 다른 것도 먹어봐야지."


식사시간동안 여자아이는 다시 수다스러워졌다. 아이의 엄마도 소년과

아이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면서 비어있는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었다.

"먼 곳에서 왔다고 들었단다. 그 곳에선 무엇을 하며 지냈니?"

"산짐승을 잡으러 돌아다녔어요."

"산 속이라 힘들었을텐데, 대단하구나."

"누나가 이것저것 가르쳐줘서 힘들지 않았어요."

"누나가 가르쳐 주다니, 대단하구나. 어떻게 사냥하는 방법을 알았을까?"

"..."


그러고보니 소년은 누이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었다.

누이는 소년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깊은 밤에는 불을 피워 그 앞에서 책을 읽어줬다.

글자를 짚어 알려주기도 하고,

낮에는 데리고 나와 나무와 산짐승들의 이야기를 해줬다.

나뭇가지를 줍거나 가지를 자르는 것은 하루의 일과였다.

소년에게 올가미를 만들어 숲에 두는 것과

가끔 따뜻할 때 피어난 버섯과 알 수 없는 것들을 알려주기도 했다.

누이는 소년의 스승과 같았다.

그러다 가끔은 산에서 나타난 성폭한 짐승에게 상처를 입고 오기도 했다.

누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었지만,

소년의 마음에는 누이가 자신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아파했다.

그 이후부터 소년은 집 안에 걸려있던 큰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소년에게 큰 칼은 무거웠지만, 겨우 들고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을 때부터 휘둘러온 큰 칼은 소년의 전신이 되어 있었다.

소녀는 그 칼이 아버지에게서부터 물려받은 칼이라며 소년을 칭찬해줬다.

소년은 가끔 산을 돌아다니며 작은 짐승이 아닌 몸집이 있는 짐승을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이는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미 올가미에 걸린 짐승으로도 충분하단다. 그만 잡아오렴."

뭔가 석연치 않아하는 얘기에 소년은 귀기울여야 했다.

어느 날, 소년이 산을 다니다 본의 아니게 큰 짐승에게 쫓기게 되었다.

칼을 휘두르던 상대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소년이 큰 짐승에게 칼을 휘둘렀다가

상처를 남기고는 쓰러뜨리지 못했던 것이다.

상처입은 큰 짐승이라 할 지라도 아직 소년에겐 힘이 부족하여 쓰러뜨리지 못하고

도망치기도 힘들었다. 큰 칼까지 짊어진 소년은 상처입은 큰 짐승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등 뒤에서 짐승의 손톱을 맞고 말았다.

등이 찢어지는 아픔에 고통스러워 하다가 의식을 잃어갔다.

희미해진 의식 중간에 큰 빛이 번쩍이는 것을 느꼈지만, 이내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집이었다. 하지만 누이는 왠지 힘이 없었다.

"이젠, 더 이상 칼을 쓰지 마."

미소를 짓지 않은 누이의 모습을 보고는 소년은 자신의 과오를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소년은 큰 칼을 쓰진 않았다. 하지만, 큰 짐승과의 사투에서 자신은

누이를 지키지 못했음을 깨닫고 강해지기 위한 수련을 시작했다.

다리와 팔의 힘을 기르고, 무거운 도끼를 한 손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큰 나무를 쓰러뜨려 장작으로 쪼개기 시작한 것도 소년이 성장하고 나서였다.

그런 소년과 달리 누이는 점점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짐승의 털을 꼬아 실을 만들고 점점 성장해가는 소년에게 맞도록 옷을 기우는

일도 많아졌다. 밤을 지새우며 천을 짜기도 했다. 작은 동물들의 털은

훌륭한 직조물의 원료였다. 가끔은 소년에게 맞는 옷을 새로 짜기도 했다.

집 안에서만 있어서 였을까? 누이는 병약해졌다. 소년에게 줄 옷을 짜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앉아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소년은 조금씩 야위어 가는 누이를 위해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해

여러가지 것들을 만들어봤지만, 헛수고였다. 누이는 먹을 것도 못 넘길 정도로

병약해져갔다. 그런 누이는 소년을 볼 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느날 누이는 소년을 부르고는 "이젠 다 컸구나... 내가 너에게 못난 짓을 한

것 같아. 벽에 걸려있던 칼을 쓰도록 해. 네게 앞으로 필요할거야....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결코 네 탓이 아니니 너 자신을 원망하지 말아."

소년은 누이의 말이 어떤 미래를 얘기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소년은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누이가 눈뜨지 못했을 땐 그저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것인줄 알았다. 미소를 잃지 않고 누워있던 누이... 하지만, 미동도

않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누이를 보고는... 죽음이 이렇게 허무하게 엄습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름다운 누이의 미소는 죽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추운 눈 밭을 걷고 얼어붙은 흙을 파내어 구덩이를 만들고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누이를 눕히곤 파묻었다.

짐승을 잡아오고는 곧잘 땅에 묻곤 했지만...

누이의 얼어붙은 몸을 묻고는... 지키지 못했다는 아픈 맘에...

짐승의 울음처럼 길게 흐느껴 울었다.

누이를 묻었던 땅이 다시 얼어붙고 눈이 쌓이는 동안...

소년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돌아왔다.

그는 누이의 말을 곰씹으며 오두막을 지키다가,

온기 없는 오두막에 홀로 있는 것이 괴로워 길을 떠났던 것이다.


잠시동안 생각에 잠겨있을 때, 미소를 띈 수다스러운 아이는

또 소년을 붙잡고는 뽀뽀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마... 그만... 밥먹다가 왜 그래..."

여자아이는 소년의 표정을 보고는,

"내가 죽어갈 때 아빠가 그렇게 해줬어."

라고 말하고는 미소를 짓는다.

"이 녀석. 그런건 어떻게 기억하는거냐?"

사냥꾼의 멋적은 미소와 여자아이의 미소.

소년은 그 미소에 물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웃었다. 그치? 그치?"

물어보며 환하게 웃는 여자아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던 누이는

분명 이 아이처럼 웃는 소년을 보며 미소지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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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05:20 2006/12/2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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