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구해준 사람은 사냥꾼이었다.

그도 마을에서 먼 산 속 깊은곳에 오두막을 짓고,

추운 북방의 밤을 장작불의 온기와 짐승의 모피 속에서 지내곤 한다.

가장 추워지는 해가 뜨기 이전 시간에 추운 공기가 사냥꾼을 깨운다.

덕분에 사냥꾼은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했다.

그 날, 소년을 만났을 때에도 그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숲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이전, 별빛으로 눈부신 북방의 눈 밭에서

추위에 쓰러지는 짐승은 한 둘 쯤 있기 마련.

저 멀리서 '풀썩' 쓰러지는 소리에 사냥감으로 알고 뛰어갔을 땐,

추위에 채찍질 당한 소년이 가냘픈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는 소년을 오두막에 데려가 장작을 패고, 불을 지폈다.

부르튼 피부에서 스며든 피 때문에 옷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냥꾼은 능숙하게 칼로 소년의 몸으로부터 옷을 잘라내고,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재빨리 모피로 감쌌다.

다행히 소년은 겹겹히 옷을 입고 있었으며, 발바닥 외에는 동상을 피했다.

밖에서 눈을 떠오고,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냄비에 눈을 넣어 물을 끓이곤

사냥꾼은 다시 외출했다.


소년이 깨어났을 때에는 다시 어두운 저녁이 되었을 무렵.

사냥꾼은 사냥해 온 노루를 손질하고 있었다.

사냥꾼은 지혜로웠다.

가축의 모피를 상하지 않게 손질하여 털옷, 장갑, 신발을 만들어 신었고,

짐승의 부위별로 적당한 손질을 하여 살코기의 훈제를 만들었다.

가끔 사슴의 뿔이나, 발굽, 뼈 등으로 화살촉을 만들었으며,

단검을 대체할 강한 검의 재료도 얻을 수 있었다.


"깨어났냐?"

묵뚝뚝한 소년에게 사냥꾼은 넌지시 얘기를 건냈다.

고개를 끄덕이던 소년에게 사냥꾼은 시꺼먼 국을 건낸다.

"이걸 먹으면 몸이 나아질게다."

소년은 입에 가져가 한 모금 머금고는 삼키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괜찮아. 오늘 잡은 녀석의 쓸개로 끓인거다. 그걸 먹어야 고길 소화를 할 수 있어."

소년은 그 말에 억지로 쓴 물을 마신다.

"너 혼자 온거냐?"

"네."

"어디서?"

"사조성의 반대편 넓은 들판에서요."

"너 혼자 살고 있었냐?"

"..."

소년은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누난... 잠들었어요."

"그렇구나."

사냥꾼은 그 이후로 물어보지 않고는 장작을 패오고 불을 준비했다.

추위에 익숙했던 사냥꾼은 새벽녘까지 불을 지피지 않아도 충분했지만,

눈 밭에서 몸이 약해진 소년은 추위를 견디지 못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배려심 많은 사냥꾼은 아무런 도구도 없이 눈밭을 걸어왔던 소년을

보고는 놀라웠다.

하얀 눈 밭이 반사하는 따가운 북방의 태양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곤 했다.

사냥꾼은 눈 앞에 두를 정도의 크기로 나무를 잘라서는 칼집을 내어 그 틈새로

밖을 내다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눈이 부셔서 어느 순간엔 모든 세상이

하얗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사냥꾼은 소년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는 몸이 나아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보살펴주며,

사냥꾼의 얘기를 해줬다.

어린 사슴과 함께한 어미 사슴은 잡지 않는 다는 것.

몸이 날렵한 맹수와는 눈이 마주치면 절대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

뿔이 큰 사슴을 잡는 법.

멀리 있는 짐승을 쏴 맞추는 법.

짐승에게 들키지 않고 지나다니는 법.

...

소년의 몸은 다 나았다. 피떡이 붙은 발바닥을 조심스레 뜨거운 물에 담궈보곤

상처가 아문 것을 알고는 소년에게 맞는 신발을 만들었다.

또한 자신의 숯돌로 소년의 큰 칼을 갈아줬다.

"정말 넌 이 큰 칼을 들고 혼자 몸으로 그 먼곳에서부터 왔던거냐?"

소년의 고갯짓에 사냥꾼은 놀랬다.

짐승이 잠들지 않고 돌아다니는 밤중을 큰 칼에 의지해 돌아다녔다는 것은

사냥꾼에게도 섬뜩한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소년의 눈이 멀지 않은 것이 납득이 된다.

"오늘은 너도 나와 같이 사냥을 해줘야겠다."


소년에게 모피를 잘라 몸에 두르게 하고,

신발과 안대를 주고는 밖으로 내보냈다.

"넌 큰 칼을 들고 먼저 100 보 나아가라. 바람을 등지고 가지말고 맞서 가라."

사냥꾼은 먼 발치에서 소년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늦게서야 출발했다.

소년은 바람을 맞서 걸어본 적이 없었다.

날카로운 칼바람의 숨결에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밤에 이동을 했던 소년에게 있어서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불시에 있을

짐승의 습격에 늦게 대처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윽고, 어디선가 움직임이 눈에 보였다.

소년은 큰 칼을 뽑아 짐승을 향해 겨눴다.

하지만 어디선가 빠른 살이 등뒤를 덮치려던 짐승을 꿰뚫고는 짐승과 같이 떨어졌다.

소년은 놀라 뒤를 돌아봤지만, 실수였다.

정면에서 움크리던 몸집 큰 짐승이 소년을 덮치려 뛰어든 것이다.

짐승에게 물리게 될 아찔한 상황, 또 하나의 화살이 짐승의 머리를 꽤뚫는다.

살을 맞은 짐승 사이에 포개진 소년은 떨리는 몸을 가눌수도 없었다.

백보 밖에 있던 사냥꾼은 맞춘 짐승을 보러 소년에게 왔다.

"이녀석, 함부로 한 눈 파니까 위험할 뻔 했잖아."

짐승에게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 주변의 굵은 가지를 베어 짐승의 몸에 줄과 함께 묶어

오두막까지 끌고 가려 한다.

"이번엔 다른 짐승들이 덤빌지도 모르니, 맘 단단히 먹어라."

사냥꾼은 활과 화살통을 등에 매고, 단검을 입에 물어 불시에 덤빌 짐승을 주의한다.

소년도 한 번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온 몸을 깨워 날카롭게 신경을 세웠다.

다행히 오는 동안 짐승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두막까지 온 사냥꾼은 손이 바빠졌다.

"자, 이리로 와라. 내가 가죽을 다루는 것을 잘 봐라."

그는 능숙한 솜씨로 짐승을 다뤘다. 살 하나로 짐승을 꽤뚫었기 때문에,

가죽엔 손상된 흔적이 거의 없었다.

"이걸 잘 손질해서 마을에 팔면 꽤 돈이 되겠어. 네 덕분에 큰 짐승을

잡았구나.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짐승의 이빨과 뼈는 숯돌에 잘 갈았다.

그리곤 짐승 몸에서 빼낸 화살 끝을 잘라내서 거기에 붙인다.

"한 번 쓴 화살촉은 짐승의 뼈와 부딪혀서 대부분 다시 못 쓴다.

가죽 부분도 화살을 맞은 부분은 피해야 하지. 고기에서도 뼈가

부서져서 박힌 부분이 있을지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

사냥꾼은 큰 몸집의 짐승을 손질하고는 소년에게 다른 작은 짐승도

손질하도록 시켜본다. 눈썰미 좋은 소년이 그것을 따라하는 데에는

약간의 노력이 들었을 뿐이다.

"제법 칼이 손에 익숙하구나."

긴 시간 고생했던 소년의 군살만 보아도 사냥꾼은 소년의 재주를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참나무 장작으로 고기를 훈제하고, 남은 고기를 불에 구어 소년과

나누어 먹었다.

"나무숲엔 너무 들어가지 말아라. 매번 그날 쓸 장작만 패와야 한다."

사냥꾼의 얘기는 모두 흥미로운 것 뿐이었다.

누이에게선 들을 수 없었던 얘기로 소년은 흥미를 갖고 사냥꾼을 따르게 되었다.


어느날 사냥꾼은 오두막의 살림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을로 가자. 이제 이 곳에선 사냥을 그만 해야겠어."

소년에게 그동안 훈제했던 고기를 짐수레에 실어두도록 했다.

짐수레에 모피와 훈제된 고기가 한 가득 실렸다.

"내가 수레를 끌 테니 넌 뒤에서 따라와라."

길을 떠나고는 2~3일 정도 밖에서 노숙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너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지냈지?"

"사냥을 했었어요."

"사냥? 활로?"

"아뇨. 칼로 잡았어요."

"네가 칼이 익숙한 이유를 알겠구나."

"이건 아버지의 전리품이랬어요."

"전리품? 아버지가 주신 것이냐?"

"아뇨. 누나가 그렇게 말해줬어요. 누나가 이 검을 쓰도록 연습하게 했죠."

"그렇구나. 좋은 누나였구나."

소년은 다시 누나를 그리워했다. 아무도 없던 적막한 눈 속에서 홀로 오두막을

지키던 시간이 너무나 두려워졌다.

"난 널 보고나서,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사냥꾼은 무거워진 공기를 치우려는듯 말을 잇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은 항상 적막하기 이를데 없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외로움을 몰고 와.

먼 시간을 혼자 있게 되면 괴롭고 쓸쓸해진단다. 너도 분명 느껴봤을테지?

널 만나고는 또다른 나를 만난듯이 기뻤다. 넌 정말 훌륭해. 나도 걸어보지 못한

어둠의 들판을 걸어서 이곳까지 왔으니 말이다. 나는 너와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구나. 나와 같이 마을에서 한동안 지내지 않으련?"

소년은 배려심 깊은 사냥꾼에게 고갯짓으로 응답했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자, 이제 오늘만 더 걸어가면 마을이다."

소년과 사냥꾼. 그들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서로를 보듬어주며 그렇게 친해졌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6/12/26 01:41 2006/12/26 01:41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response/74

댓글+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response/74

트랙백 주소 :: http://snwslug.fossa.kr/~jachin/trackback/74

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trackback/74

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trackback/74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댓글 RSS 주소 : http://snwslug.fossa.kr/~jachin/rss/comment/74
댓글 ATOM 주소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comment/74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