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노인이 관문에 도착한지 2일 후. 마을에서 수레가 2대 왔다. 보기에도 많은 로프가 수레 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물론 약간의 먹을 것과 술이 몇 병 같이 왔다. 그리고 수레에는 사냥꾼의 딸도 따라와 있었다.
"아빠~!"
"오오~ 우리딸! 어디 다친데는 없었니?"
"아, 여기하고 여기."
아픈 것을 자랑삼아 얘기하는 응석받이 딸의 재롱이 기쁘기만 한 사냥꾼. 그러나 그러한 재롱도 잠시. 바로 소년을 찾는다.
"오빠는? 오빠는?"
"글쎄... 지금은 아저씨들과 검술 연습을 하고 있을거다."
"에에? 내가 온다는 거 몰랐어?"
"그럴 새가 없었단다. 네가 왔다는 것을 알면 무척 좋아할거야. 어서 찾아보렴."
"있다봐요~!"
딸의 인사에 흐믓한 표정을 짓던 사냥꾼의 미소가 조금씩 엷어질 때, 저 옆에 앉아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노인이 말문을 연다.
"자네, 무척 안타깝겠구만.."
"그러게요. 벌써 다 커서 남자를 따르다니 말이죠."
"어쩌겠나. 저 나이가 되었으니, 남자를 찾아갈 만 하지."
"하지만, 마을에 있던 아이들은 거들떠도 안 보고, 왕자님을 따르다니..."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자, 우리도 마저 준비하러 가세."
사냥꾼과 노인은 사람들을 데리고 수레에 쌓인 로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참 격검 소리가 가득한 캠프장.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함께 건장한 사내와 소년이 서로 목검으로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계속 움직여라! 검을 쉬지마! 상대방이 자세를 잡기 전에 쳐야지!"
그 옆에서 사내를 혼내키며 윽박지르는 애꾸눈이 서 있었다. 애꾸눈은 사람들에게 사냥꾼 다음으로 따르는, 아니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오는 것은,
"애꾸아저씨!"
"앗! 이게 누구야?! 언제 왔니?"
사냥꾼의 딸 뿐이었다.
"잠깐 쉰다! 네 녀석, 너보다 한참 적은 녀석에게 밀리다니, 네 놈은 내가 상대한다!"
"아저씨! 그만 해요. 오빠가 미안해 하잖아요!"
"응? 오빠라니? 누구말이냐? 저녀석?"
소년은 애꾸눈에게 이미 한 번 호되게 혼났었다. 워낙에 호전적인 성격이라 마을의 괴물들을 쫓았다는 얘기에 소년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마침 캠프를 둘러보러 온 사냥꾼과 소년에게 검술을 지도한다는 핑계로 한 판 붙었다. 물론 목검으로 서로 격검했지만, 애꾸눈은 자신의 목검으로 소년의 목검을 부러뜨리고 소년에게 한 판 승을 따냈다.
"저녀석이 네녀석 오빠라고? 넌 오빠가 없잖냐?"
"아냐. 오빠가 날 구해줬는걸. 아저씨! 오빠 괴롭히면 안돼!"
"아아... 이거 어쩐다."
"괜찮아. 아저씨는 나한테 아주 잘 해주시는걸."
땀을 닦으며 소녀에게 다가온 소년을 보고 멋적은 표정을 짓는 애꾸눈의 눈치를 보고 소녀는
"아저씨!!"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아이쿠... 아저씨 귀 안 먹었다. 그러지 마라. 이제는 정말 친하게 지내니까."
"그래. 맞아. 아저씨가 내게 검술을 가르쳐주시느라 그랬던 것 뿐이야."
애꾸눈은 소년에게 빚이라도 진 듯 어쩔 줄 모른다. 소녀와 있을 때에는 고분고분한 사람이라 애꾸눈이 소녀와 같이 있을 때에는 평소 쩔쩔매던 사람들도 애꾸눈을 놀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애꾸눈은 확실히 무기를 다루는 데 소질이 있었다. 같은 무기라도 애꾸눈이 쓰면 상대방의 무기를 파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묘한 검술 덕분인지 몰라도, 백병전에서는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소년과 소녀의 모습이 질투났기 때문일까? 갑자기 또 애꾸눈이 소년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안 봐준다. 지난 번은 살살해준거야!"
"이번엔 당황하지 않겠어요. 확실히 아저씨 실력은 사기라구요."
"사기? 너 이녀석, 두 번이나 당하고 사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 보자."
"오빠, 이겨라!"
"야, 너까지 그러기냐. 이 아저씨 좀 응원해줘라."
"싫어요. 오빠가 더 좋으니까 오빠편 할래요."
"이녀석, 그럼 오빠를 뚜둘겨 줄테다!"
"오빠는 못 이길걸요?"
소년은 지난번 대련에서 실제로는 검에 맞지 않았다. 민첩한 몸놀림 덕분인지 목검이 부러졌어도 애꾸눈에게 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짧은 검으로 애꾸를 밀어붙였었다. 하지만, 사냥꾼이 말리면서 소년이 애꾸눈에게 검을 배우도록 지시했다. 애꾸는 자기 기술을 보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캠프에 있던 사람들의 검술 상대로서 혹사 시키기만 했다. 애꾸는 소년이 가진 검이 무척이나 좋은 검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는 소년의 문제점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이 쓰는 검은 소년의 몸을 담보로 하는 물건이라는 것을...
한참 격검이 이뤄지면서 두 사람 얼굴에는 조금씩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꼬마. 네녀석 이번엔 꽤 오랫동안 버티는 걸? 하지만, 아직 멀었어."
"그러는 아저씨야 말로 사기치지 않고 잘 싸우시는걸요?"
"네녀석. 그런걸 사기라고 말하면 넌 아직 철부지라는 소리야. 넌 이제 끝이다."
애꾸의 외마디 기합에 다시 소년의 검은 부러졌다.
"자. 거기까지!"
저녁이 되어 캠프로 돌아온 사냥꾼은 애꾸눈과 소년의 시합을 보다가 이전과 같은 전개를 보고 다시 대련을 멈췄다.
"아니, 왜 자꾸 멈추고 그래요? 저 녀석, 아직까지 제대로 검을 다룰 줄 모르는데.."
"괜찮아. 이제 곧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 거라네."
"그나저나 저렇게 힘 센 놈이 어디 있었답니까? 저번에 마을로 왔을 때 그 비리비리한 녀석 맞나요?"
"그렇다네. 정말로 몸을 사리지 않지. 그게 걱정이라네."
"네. 저렇게 자기 무기와 몸을 돌보지 않는 녀석은 처음이에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소년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소녀는 두 사람의 대련을 쭉 지켜보면서도 분명 소년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냥꾼과 애꾸눈의 대화는 왜인지 모르지만 소년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녀는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 어디 다치진 않았어?"
"응. 괜찮아. 조금 손바닥이 까진 것 뿐이야."
소년의 손은 물집이 생겨서 이미 터져 있었다. 분명 이전까진 없었던 것이었는데...
"괜찮아? 많이 아프겠다. 내가 곧 치료해줄께."
소녀는 소년의 손을 끌어 캠프 내의 창고로 데리고 갔다.
사냥꾼과 애꾸눈은 한참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끝낼 때까지, 애꾸눈과 사냥꾼은 한참 얘기를 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려줬다.
"잘 들어라. 우리는 밤이 깊어지고, 달이 뜨기 바로 전의 새벽에 일어나 저 산을 넘어간다. 모두들 지금 미리 눈을 붙여두도록 해라."
사람들의 모습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산을 넘는다는 얘기에 조금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을 넘는게 가능한 일이던가? 사람들은 저마다 쑥덕댔지만, 사냥꾼의 말이기에 모두들 무언가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잠시 동안의 대화가 이어지고는 모두들 모포를 두르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도 사냥꾼과 같이 캠프 내의 화톳불에 앉았다.
"애꾸눈에게 자꾸 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니?"
"아냐, 오빠는 지지 않았어."
"제 검이 부러지는 것은 제 무기가 약해서 그런것 아닌가요?"
"아니다. 그것만이 아냐. 애꾸눈도 너와 같이 싸우는 것이 무척 힘들긴 하다만, 네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알고 있지."
"그게 무언가요?"
"애꾸눈은 너의 검술 실력을 무척 높게 평가한단다. 너 혼자 익혔다는 사실에 더 놀라워하지."
"오빠는 역시 강하지?"
"그래. 무척 강하단다. 하지만, 너에게 꼭 익혔으면 하는 것이 있단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무기를 다루는 법. 여태까지 네 검은 너의 힘을 의지해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네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검으로부터 받는 충격이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검을 오랫동안 휘두르고 있으면 몸에 무리가 온단다. 다른 사람들이 너의 검을 쉽게 막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그럼 이틀간 사람들의 검술 대련을 시킨것은 무엇 때문이죠?"
"목검은 실제 검보다 가벼우면서도 충격을 완화해준단다. 네게는 힘을 빼게 하기 위해 그랬을지도 몰라. 적의 검만큼 적절한 힘으로 상대방을 상대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지."
"..."
소년은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애꾸눈의 검은 확실히 강해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대련을 할 때 보다는 훨씬 쉽게 지치고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애꾸눈은 무엇을 알고 있는걸까? 소년은 그가 자신의 목검을 2번이나 부러뜨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플거야."
소녀가 소년의 손의 물집을 두르던 붕대를 벗겨내면서 술로 적신 거즈를 대었다. 소년은 멍하니 소녀에게 손을 맡기고 무언가 골똘한 생각을 하나보다. 사냥꾼은 아픈 표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아서 조금은 실망한 듯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럴거다. 처치가 끝났으면 일찍 자자."
소녀를 잠자리에 눕혔다.
숲에 어둠이 내렸다. 어둠은 화톳불 주변만을 남기고 깊게 쌓여있었다. 아니, 경계를 보던 관문 위의 사람들과 캠프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 어둠은 내리지 않았다. 사냥꾼은 조용히 사람들을 모았다.
"오늘 새벽. 달이 뜨기 전에 저 산을 넘어 적진으로 들어간다. 모두들 술병과 로프를 챙기도록. 춥다고 생각하면 술을 한 모금씩 마시도록 해. 하지만 취하지는 말라구."
농담섞인 지시에 사람들은 긴장했던 모습이 조금 풀렸다. 노인도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건낸다.
"이 산을 넘어가면 들어올 때에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만약 이 일이 실패해서 되돌아오게 된다면, 적에게 뒤를 밟히지 않도록 빨리 퇴각해야 하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출발하게."
사람들은 로프를 어깨에 두르고 캠프를 조용히 떠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별빛만으로 어둑어둑한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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