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용한 침묵이 이어지고, 조금은 녹슬었지만, 날카로운 바람.

잘 다듬은 가죽 겉옷은 날카로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도 소년의 살을 벨 수 없었다.

조용한 정적. 청정한 바람의 냄세. 모든 것이 이전과 같았다.

아니, 적어도 소년의 손에 남은 흉터는 이전의 경험이 남아있었다.

썰매 덕분에 장작을 실어와서 안전한 길에서 불을 떼고 잠들 수 있었다.

짐승들도 사람들의 냄세가 베어있는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굶주린 짐승들이 멀리서 육포의 냄세를 맡고 모습을 내비췄지만,

사냥꾼의 활로 위협을 주고는 길 멀리에 육포 한, 두 점을 던져놓고 갔다.

소년에게 더 이상 짐승은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밤이 되면 장작으로 불을 밝히고, 나무를 등지고 앉아 가죽 담요에 몸을 누벼 넣었다.

장작이 다 탈 때 즈음이면, 북쪽 대륙의 이른 햇살이 소년의 눈을 뒤덮었다.

그의 몸은 기름지게 살이 올랐고, 추위와 피로는 그에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3~4일이 지나지 않아, 그는 쉽게 이전에 누이를 눕혔던 무덤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의 냄세가 나지 않는 그 곳.

누이의 숨결도 얼어붙어 더 이상 그곳은 따뜻하지 않았다.

잠시동안 이전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집으로 가보았다.

이미 많은 짐승들의 방문이 있었던 듯 하다.

집의 문을 열어보니,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무너진 지붕 한 모퉁이로 새들이 숨어와

둥지를 틀어놓고 있었다. 갑작스런 손님의 방문에 새들은 부산을 떨면서 시끄럽게 울어댔다.

바로 그 때, 소년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순간 몸을 비틀어 사나운 발톱을 피했다.

마침 따뜻하고, 아늑한 곳에 곰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신의 잠을 방해한 소년이 무척 탐탁치 않았나보다.

소년은 자신의 몸집에 배는 큰 곰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집이 부서지면 자신이 찾을 물건도 파묻힐 수 있을테니까...

곰은 성난 몸짓으로 집 문을 밀치고는 뛰어나왔다.

순간 소년의 손 끝에 화살이 들리고, 활 시위를 당겼다 놓는다.

곰의 단단한 머리에 화살은 한 번에 꽂혔고, 곰은 몸부림치다가 끝내 쓰러진다.

집은 부서져 있었고, 한 켠에 누이의 물건을 넣어둔 서랍장이 있었다.

다행히 누군가 손댄 흔적은 없었다.

조급해진 맘에 소년은 서랍을 열고 이것저것 뒤져보기 시작했다.

목걸이... 목걸이... 목걸이...

목걸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만... 누이를 누여주었을 때... 목걸이는 누이의 목에 걸려있었다.

잠시 숨이 멈추고... 긴 한 숨을 내쉰다.

돌아가야겠다. 헛걸음을 한 것 같다. 내심 한 숨을 몰아쉬며 시간만 허비한 자신에게

왠지 분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랍장을 닫으려 할 때... 서랍장에 넣어둔 책이 눈에 띈다.

책이라면 벽에 붙여 놓은 선반에 놓았는데...

일부러 숨겨둔 듯한 느낌의 책을 손에 집고는 열어보지도 않고, 썰매로 간다.

아까처럼 또 짐승의 방문이 있을까봐, 소년은 도끼를 찾아들고 와서

새들의 둥지를 밖의 나무 위에 올려두고,

집의 지붕을 베어온 나무로 막아두었다. 아까 부서진 문도 새로 나무로 만들어 붙였다.

눈이 많이 내리는 계절은 아니니 한철 임시적인 방편으로 두었다.

아마,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 생각되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긴 절기에 소년은 이른 새벽 이곳을 찾아와서,

어둑해질 때 까지, 집을 수리해두었다. 잠시동안 마을에서 배웠던 기술들이

이리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집에 썰매를 끌어놓고, 한동안 지피지 않았던 난로 굴뚝의 눈을 밀어 낸 후,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잠자리를 만들어 두었다.

추운 겨울마다 누이와 함께 지냈던 자리는 오랫동안 먼지와 무너져내린 지붕잔해로

잠들 수 없었다. 가져온 가죽 담요에 몸을 누이고, 한동안 장작불을 보다가 잠이 든다.

소년에게도 집에 온 하루는 무척이나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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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5 17:10 2007/09/0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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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민수 2007/09/06 0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쓰시네요. 멋지십니다.

    요즘 저도 판타지는 아니고 로맨스 소설을 써볼려는데..

    좀 내용을 크게 잡으려니 어려움이 상당하네요.

    • 바부... 2007/09/06 0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익후... 이런...

      지금 쓰시는 소설같은 이야기들도

      충분히 저보다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삶이 픽션인 분에게 제 환타지 소설을 칭찬받다니 쑥스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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