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활약과 키다리 아저씨(?)의 활약으로 마을은 다시 평안함을 되찾았다. 소년이 처음 마을에 나타났을 때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사람들도 소년의 활약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그는 새로 나타난 영웅이었다. 불태워져 없어졌던 담과 벽들을 세우고, 눈사태로 덮힌 논밭들을 다시 개간하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그들과 같은 동지애를 느끼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힘든일에 아랑곳 않고 마을을 착실히 회복해 나갔다.

몇 일 지나서였을까, 소년도 마을 정비에 같이 참여하여 눈에 덮힌 집을 수리하러 갔다가, 방어기지로부터 손님이 왔다는 말을 듣고 마을 광장으로 나가보았다. 길 가는 동안 사람들의 눈에는 무언가 기대가 찬 모습이 느껴졌다.

마을 중앙에는 허름한 옷차림에 달구지를 타고 온 연로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달구지에서 내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노인을 존경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아이가 그 소년인가?"
멀리 서 있던 노인이 처음으로 한 얘기에 사람들은 소년을 알아보고 길을 터주었다. 소년은 얼떨결에 노인의 앞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늠름한 소년이군요. 자... 추우니 잠시 사냥꾼의 집에 가서 얘기해볼까요?"
그와 함께 사냥꾼의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주머니는 무척이나 놀란 기색을 보이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어르신. 어서 들어오세요."
아주머니의 뒷 쪽에서 삐쭉거리며 서 있는 소녀를 보고 노인은 반가운 목소리로 얘기를 꺼냈다.
"아, 수줍은 소녀가 되었구나."
소녀는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하다가, 눈짓으로 아는채를 하며 고개를 숙이곤 부엌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이 노인이 사냥꾼과도 아는 사이임을 알아채고는 그의 행동거지가 남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 마을에서의 적을 훌륭히 막았다고 들었다오. 이 늙은이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얘기해줄 수 있겠오?"
사냥꾼의 딸과 부인에게도 이 노인은 경어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았다. 왜 자신에게만 경어로 대하는지 궁금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자신에게 장난으로 대하는 것은 아니라 여겨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한참 지나고, 죽은 누이의 무덤을 두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끝마친 후 소년은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잠시 서글픈 눈을 하고는,
"그랬군요... 그랬었군요... 참 장하십니다... 장하세요."
라고 말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누이의 유품을 갖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소년은 자신의 검 외에는 가지고 온 것이 없다고 말하며, 검을 보여주었다.
"아주 좋은 검입니다. 꼭 잊지 마십시오. 이 검의 이름은 푸른 이빨이랍니다."
노인은 이 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소년은 노인에 대한 궁금증이 넘쳐났다.
"이 검을 아시는겁니까? 이 검은 제 아버지께서 주신 검이라고 누이가 말했습니다. 이 검에 대해 아신다면 제 아버지에 대해서도 아시는 것입니까?"
"먼 길을 와서 조금 지치는군요. 그 얘기는 나중에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을텐데, 저희 방을 치워두었습니다. 들어와서 몸을 누이세요."
"고마워요. 항상 신세를 지는군요."

소년은 갑자기 나타난 할아버지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그가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소녀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봤다.
"너, 저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게 있어?"
"나 어렸을 때 봤던 할아버지야. 가끔 마을에 오셔."
"지금도 어린데 얼마나 어렸을 때?"
"몰라! 내가 왜 어리다는거야?"
아깐 할아버지 앞에서 수줍어하더니 자기 앞에선 화를 버럭 내는 모양새에 소년은 흠칫 놀란다.
'정말 무서운 할아버지였나보다. 자기도 감당 안되는 소녀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라면...'
자기 나이를 셈해보아도 훨씬 어린 사냥꾼의 딸이 더 어렸을 때이니, 아마도 그리 오래전은 아닌가보다. 한 1, 2년 전에 왔었겠지? 그가 매해 한 번 마을에 온다는 것은 그의 일이 범상치 않은 일인 것임에 틀림 없었다.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다시 눈 덮힌 마을의 집을 수리하러 나갔을 때,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났다.
"어르신이 오셨다며? 어디계셔?"
"어르신은 주무시러 들어가셨어요. 그런데 왜 어르신이에요?"
"아~ 몰라. 너한테 얘기한다는 것을 깜빡했구나. 저 분은 이 나라 전체를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을 만나보시는 분이셔. 이 나라의 국왕도 저 분을 함부로 하진 못하지. 사람들은 저 노인이 나타나면 해로운 식충의 문제나 전염병에 대해 물어보고, 도움을 받기 일쑤라 저 분을 현자라고 불러. 그 분은 이 나라에서 모르는게 없는 분이시거든. 아무튼 너 어르신이랑 만나봤냐?"
"네. 아까까지 있다가..."
"뭐라고 하셨어?"
"음... 칼을 지니고 다니라고..."
"에? 그것 뿐이었어?"
"네."
"하긴... 뭐, 네 칼 정말 좋더라. 나도 그런 칼 갖고 싶어."
"그 칼은 제 거에요. 탐내지 마세요."
"알아알아. 잘 간수해. 어르신이 간수 잘 하라고 하신것 보면 분명 범상치 않은 물건일거야."
현자... 그런 사람이라면 자신의 검에 대한 얘기를 알만하다 생각하며, 하던 일을 계속 하러 마을로 돌아갔다.

다음날이 되어 사냥꾼의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 동안 어르신이라 불리는 노인이 같은 식탁에 앉았다.
"이곳이 맘에 듭니까?"
대뜸 소년에게 아침부터 물어본 말에 소년은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네. 아주 좋아요. 하지만 제게 너무 어렵게 대해주지 마세요.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분인데 어째서 제게 경어를 쓰시나요?"
"그건 차차 알게 됩니다. 어제 말했던 오두막 말인데, 한 번 다녀와주지 않겠습니까?"
"네? 예전에 살던 집으로요?"
"네. 누이와 살던 집으로 가시면 분명 누이가 하고 있던 목걸이가 있을 겁니다. 그것을 찾아와 주십시오."
"하지만, 그곳에서 온지 적어도 5달은 되었는데요."
"괜찮습니다. 가서 목걸이만 찾아와주시면 됩니다."
"갔다오는 데에 족히 1주일은 걸릴텐데, 그 때 까지 계시는건가요?"
"네. 물론이죠. 이곳에 계속 있을테니, 갔다오십시오."
소년은 의아함을 풀지 못하고 그저 하라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내일 갔다올께요."
"아니, 지금 바로 갔다오십시오."
"..."
"네? 그렇게 빨리요?"
소년보다 먼저 놀란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 것은 사냥꾼의 딸이었다.
"할아버지, 왜 오빠를 다시 보내는 거에요?"
"미안하다. 꼭 확인하고 싶은게 있구나."
"그래도 거기엔 짐승도 많고, 오빠가 왔을 땐 많이 아파했던 곳인데, 갔다오면 또 아프잖아요."
"괜찮아. 이번엔 제대로 옷도 갖고 있고, 사냥꾼 아저씨 활도 있으니까, 갔다오는데 힘들지 않을거야."
"그래도... 그래도..."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소녀에게 소년은 머리를 다독거리면서 괜찮다는 말을 멈추지 못했다.
"알았어. 대신 빨리 갔다와."
"응, 그래. 빨리 갔다 올께."
소년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노인이 대뜸 소년을 쳐다보다가, 다른 말을 한마디 꺼냈다.
"사냥꾼의 썰매가 있을테니, 그것을 끌고 갔다 오십시오."
그리고는 소년을 데리고 집의 뜰 옆에 있는 창고에 가서 소년에게 무언가를 가리켜 보였다. 커다란 나무를 깎아 매끄럽게 만들어 붙인 썰매가 먼지를 쓰고 있었다.
'현자에겐 다른 사람의 집에 있는 물건도 다 알고 있나보다.'
소년은 아주머니께서 싸주신 육포와 장작, 도끼, 가죽옷을 받아들고 썰매에 묶어 빨리 길을 재촉했다. 검과 활, 화살을 챙기고 한 손으론 썰매를 끌며 출발했다.
"빨리 갔다와야 해~"
동네 밖으로 나갈 때 소녀가 흔드는 손을 보고 같이 손을 흔들며 소년은 다시 예전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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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5 16:31 2007/09/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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